졸리님의 이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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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났어

옛날에 통신 모임에 나갔는데, 거기가 종로였을꺼야.

무슨 호프집에서 모임이 있었어.

그때 나는 사람들도 잘 모르고 거기 나간지 얼마 안된 처지였지.

허세로 가득 차 있었고.

그런데 내 바로 맞은편에 귀여운 여자 아이가 하나 앉은거야.

아담한 체구에 눈이 새앙쥐처럼 빛나는 귀여운, 묘한 느낌이 있는 여자 아이였어.

별명이 '소리엘'이었을꺼야. 아마. 이름도 생각나는데, 이쁜 이름이야. 여기 적진 않을래.

그런데 나는 허세에 가득 찬 남자니까, 애써 관심 없는척 하며 있었거든.

그런데 그 애가 빤히~ 내 눈을 쳐다 보는거야. 빙글 빙글 웃으면서.

나는 당황했어. 하지만 안되잖아. 허세에 가득찬 이십대 남자 아이인데!

애꾿은 맥주만 홀짝 홀짝 마시면서 여기 저기 이야기에 기웃거리고 있었지.

그런데 그 애는 나를 계속 빤히 쳐다봐. 여전히 빙글 빙글 웃으면서.

아아... 빨려들어갈것 같더라구. 아마 내 얼굴도 붉어졌을꺼야.

...
......

그러다가 오기(?) 같은게 발동해서 나도 그애 얼굴을 빤히 쳐다 봤다.

그랬더니 그 애가 웃음도 그대로, 눈도 내 눈에 맞춘채로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어.

나는 허세에 가득찬 이십대 남자지만 사실은 좀 고리타분한 구석이 있어서 여자 아이가

담배를 꺼내는 모습에 좀 놀랐어.

눈을 맞춘채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더니(그 작고 오밀조밀한 입에! 새하얀 담배를!)

불을 붙이곤 한번 깊이 빨아서 연기를 후~ 하고 뱉어 내더라구. 

아아... 그 무슨 영화던가 샤론스톤이 담배 피우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던 영화 있잖아.

그보다 백배는 저 아찔한 느낌이었어.

그런데, 그런데!

진짜 사건은 여기서 부터야.

그애가 그렇게 담배를 한모금 빨더니 그 불 붙은 담배를 그대로, 여전히 눈은 나와 맞춰져 있는 상태에서

건네주네! 나에게! 담배를! 무슨 영화도 아니고! 그렇게 귀여운 애가! 새앙쥐 눈을 반짝이면서!

물론 나는 흡연자였어. 1년도 안된 초짜이긴 했지만... 

난 허세에 쩔어 있는 이십대 남자였으니까, 절대로 당황한척 하면 안되는거잖아. 

하지만 그 순간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어. 

'에이, 더럽게 너 입에 물었던 거를 왜 나한테 줘?' 라고 하며 거절해야 하나? 이게 가장 먼저 든 생각.

'왜 담배 불을 붙여 주지? 나도 담배 있는데? 나 놀리나?' 하는 생각이 두번째.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내 몸은 당연하고 아무렇지도 않음을 가장하려고 애쓰면서

(아마 앞에서 보는 그 애에게는 아주 웃긴 모습이었을꺼야) 담배를 받아서는 피웠어.

손이 약간 떨렸던 것도 같아.

...
......

술 자리 내내 그 애와 내가 별다른 이야기를 한건 없어. 그 애는 기본적으로 별 이야기가 없더라구.

그냥 내 눈을 지긋히 보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은 장면이 몇번. 

그리곤 담배도 피우지 않더라구. 하지만 술은 많이 마셨던것 같아.

그 자리가 끝나고 일찍 갈 사람들은 집에 가고, 더 마실 사람들은 자리를 옮기기로 하고 술집을 나왔어.

그 당시에 한번 모이면 십여명이 되니까 술집 앞이 시끌시끌 하지. 그리고 은근히 자기가 마음에 둔 사람이

집에 가나 아니면 한잔 더 하러 가나를 살피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나도 허세에 가득찬 이십대 남자아이 답게 안보는 척 하면서 그 귀여운 새앙쥐 눈이 어디에 있나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불쑥 그 애가 내 앞에 나타나더니 팔짱을 끼며 한잔 더 하러 가자는 거야.

술이 많이 취한것 같았어. 그래서 엄청 더 귀여웠지.

나는 속으로 뛸듯이 기뻤어. 솔직히 말하면 난 한잔 더 하는 자리에서 그 애랑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길

기대한건 아니야. 그냥 바로 헤어지지 않는구나. 정도의 느낌. 조금 더 눈빛을 맞고 싶다. 조금 더 희롱 당하고 싶다.의 느낌.

그런데!

왜 늘 여자들끼리 놀러온 테이블에 같이 놉시다 하면 가장 안 예쁜 친구가 '우리 그런애들 아니에요!'하잖아.

그것처럼 그 애랑 친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애가 '어머, 너 취했어. 너 빨리 집에 가야해'라고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거야. 그 애는 '나 안취했어~ 나 한잔 더 할래~' 앙탈을 부리고. 물론, 그 모습도 아름답고 귀여웠지.

그러다가 결국 두 명(그중에 한명은 남자였던듯)에게 연행되듯 양 팔이 붙들려서 지하철역으로 끌려 갔어.

그런데 끝까지 뒤를 향해 끌려 가면서 나를 보고 팔을 뻗치며 '졸리야~ 나좀 구해줘~~~' 비슷한 말을 하는데...

아후... 정말 공주님이 악당들에게 납치되어 가는데 나도 포박당해서 손도 못쓰는 비참한 심정이랄까?

...
......

그 애와의 썸씽은 그게 다야.

다음에 같은 모임 술 자리가 또 있어서 나갔고 그 애를 만났지만 그 애는 별로 나를 아는척도 하지 않았고

그런 눈빛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담배를 건네지도 않았고, 그렇게 술에 취하지도 않았다.

참 이상하지?

그래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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