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과 내 개인적인 일들
이 땅의 친일파가 사는 법 - 잃어버린 10년의 의미

할아버지는 경찰이셨고, 고향의 농협 조합장을 하셨단다.

아버지가 들려 주는 할아버지의 삶에서 위에 링크된 글의 조각들이 얼핏 비친다.

물론, 아버지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자랑스러운, 대단한 분이셨겠지만.

우리 아버지는 시골 출신 치고는 공부를 무척 잘 하셨단다.

그래서 대학 졸업하고 은행으로 스카웃도 되셨고, 사업도 하셨었다.

아버지가 사회 활동을 예전만큼 못하게 되신 것은 공교롭게도 IMF 이후이다.

중소기업 사장이셨던 아버지는, IMF 이후 지금까지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고 계신다.

아버지는 노무현과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을 모두 빨깽이라고 했다.

나는 2000년 군대 제대하고부터 조금 더 자란 시각으로 옆에서 아버지를 지켜 봤다.

나는 분명히 안다. 아버지가 왜 노무현과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을 모두 싫어 하시는지를.

아버지는 아버지가 누리던 모든것들(리베이트, 뒷돈, 인맥, 학연, 지연으로 모든게 통하던 그때)을

빨갱이들때문에 빼앗긴 것이라고 생각 하시는 것 같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많이 다르다.

세상은, 조금씩이지만,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 간다.
by 졸리 | 2009/06/11 09:42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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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狂虎 at 2009/06/11 15:05
사실 저희 집도 그랬답니다. 내가 대학갈 적 어려운 처지에도 대학을 보내니 빨갱이들이 득시글거린다는 대학에서 선배들의 꼬임에 빠지지 말고 잘 다녀 집안을 다시 일으키시길 바랬지요. 그러나 그땐 교수임들도 삭발을 하시고 혈서를 쓰시던 86-87년, 어쩔수 없는 세월의 질곡을 벗어날 수없엇습니다. 원망도 햇지만 그게 내 운명의 일부인걸 어떻합니까 우리 나라의 운명이기도하고. 저의 아버님도 그런 입장에서 '만들어진 빨갱이-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몫을 찾고자 데모를 하는 자들'를 무척 싫어하셨고 지금도 그러십니다만, 저는 다릅니다. 저와 같은 삶을 살게 하기싫어서, 제 아이들에겐 이런 말도 안되는 부조리가 배워 온 정의를 간단히 깔아 뭉개는 세상이 고쳐지길 바래서 항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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