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님의 이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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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모든 일의 시작은 친구가 선의로 선물해 준 시놀러지 nas였다.

오래된 기기지만 잘 동작했고, raid 1으로 하드 두개를 붙이고 나니 본능적으로 '백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백업 시디, 하드를 모아온 외장하드로 손이 갔고, 백업을 하는 중에

그 내용을 이리 저리 둘러 봤다. 

거기에는 이십대 후반의 내가 들어 있었고, 대화도, 사진도, 전화번호부도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 졌다. 

...
......

군에 늦게 갔다. 전략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안일하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군대에 가서 얼마 있다가 imf니 뭐니 뉴스가 나왔고, 휴가를 나와보니 집이 이사를 해 있었고, 제대 했을때는

집에 내가 있을만한 공간이 부족했다. 중소기업 사장님이셨던 아버지는 결과적으로는 그 때 이후 사업적, 사회적인

재기를 못하시곤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여자 친구도 있었고, 부모님의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 그런 판단(어리석은, 지금 생각해 보면)을

했던거 같다. 취직을 하고, 그 회사에서 인정을 받자. 내 힘으로 이 모든 상황을 돌파하자. 인정 받자. 

제대하고 한 일년 정도 일에만 매달렸던거 같다. 이때 처음으로 아버지께 추석에 고향에 

꼭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가 엄청 화를 내는 모습을 봤다. 처음이었다.

내가 잘못해서,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부모에게도, 여자친구에게도 잘 못했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인정 받고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면 더 좋은 인연이 새로 생길 것이고, 부모에게도 맘껏 효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의 효도는 사실, 성공한 자식을 자랑할 수 있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삶의 굴곡이 없는 사람이 없을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년도 안된,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었다. 일을 잘 해서 사회적으로 업무적으로,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성취를 얻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꺼라고 생각하다니! 바보 같았다.

여기서 반전인데,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면 실제로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이 된다. 

내가 간과하고 잘못  생각했던건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전산에서 그런 이론이 있다. 컴퓨터로 풀 수 없는 문제의 정의에는, 정말로 답이 없는

문제도 있지만, 너무 시간과 공간(메모리)가 많이 들어서 현실적으로 풀 수 없다고 판정하는 문제가 있다.

돈으로 모든걸 해결할 수 있으려면 정말이지, 기하 급수적인 성공과 부가 이뤄져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못한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젊은(이십대, 삼십대 초반) 분들이여, 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기를. 

돈이 모든걸 해결해 줄 수 없는게 아니라, 내가 그 만큼 충분한 돈을 벌 가능성이 매우 낮으므로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소중한 순간순간을 즐기시길. 

특히, 공부만 때가 있는게 아니라(아니, 오히려 공부는 지금이라도 하면 된다!) 세상 모든 일에 때가 있는데, 

주로 부모와 형제와 애인과 사랑을 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젊은 시절에 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고, 

나이가 들고나면 할 수 없어진다. 

...
......

슬프지는 않다. 그냥 그랬구나 싶다. 

여전히 나의 현재에는 사랑해야 할, 사랑할, 사랑스러운 것들이 많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제는, 삶을 이정도 살았으면, 지난 기록(백업 시디, 하드, 오래된 앨범)을

보며 과거를 추억만 할 게 아니라, 내일의 나에게 미리 메세지 한 자락을 남겨 보는걸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일의 나를 생각하면, 문득 궁금해 진다. 

어디까지 있을까? 몇 날이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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